MOMENT

오늘은 텐트 없이 1박을 합니다

2022.06.29

리랑온에어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잠을 청한다. 비바람이 치는 산 정상에서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 속에서도, 겨울 폭풍우를 만나 배가 끊긴 섬에서도 끄떡없다. 그곳이 어디든 리랑(본명 김이랑)의 침실이 되니까.


글ㅣ전민지, 사진 제공ㅣ리랑온에어




본인보다 큰 배낭을 하나 메고 떠난다. 가끔 캠핑지에 가기 전에 들린 시장에서 산 식재료 몇 봉지가 손에 들리기도 하지만, 짐은 그뿐이다. 더구나 잘 정돈된 캠핑지보다 아무도 없는 숲속, 바닷가를 찾아 뚝딱뚝딱 텐트를 치고 음식을 만들고 혼술을 하며 잠을 청한다. 이런 매력에 푹 빠진 구독자가 벌써 82만 명. 평균 조회수는 100만 회에 육박한다.




리랑온에어

본업이 디자이너였다고 들었어요.

네, 여성 의류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의류, 그중에서도 여성복은 트렌드가 너무 빨라요. 평일 주말, 밤낮없이 일했어요. 주말에 캠핑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장조사 가고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10년 넘게 일하니까 살짝 지치더라고요.


어떻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시작한 지는 한 3~4년쯤 된 것 같아요. 한때 유튜브 붐이 불었을 때, 저도 취미 삼아 콘텐츠를 올렸어요. 직장생활 초반부터 계속 캠핑을 다녔으니까 ‘어차피 계속 캠핑 가는데 그때 한 번 영상을 찍어서 올려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의류업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하필 그때 제가 경기도로 이사를 하면서 출퇴근이 4시간씩 걸리던 시기예요. 출퇴근도 오래 걸리고, 유튜브에 조금 더 집중하고도 싶고. 또 언젠가는 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던 터라,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퇴사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제가 만든 아웃도어 브랜드 ‘리앙’과 유튜브 채널 ‘리랑온에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랑온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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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나서 캠핑을 원 없이 즐기고 있겠네요.

캠핑도 한 10년 차쯤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처음에는 주로 오토캠핑 위주였는데, 짐이 커서 자주 나갈 수가 없었어요. 캠핑장을 조금 더 자주 찾고 싶어서 배낭 하나에 짐을 간단하게 싸는 백패킹을 하게 됐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평일에 캠핑하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빈도수가 전보다 늘어나니까 색다른 재미를 찾고 싶어서 점점 장비를 줄이기 시작했어요. 주변의 나뭇가지로 불을 피우고, 폴대나 젓가락을 만들어서 사용해요. 해루질로 굴이나 조개를 구해서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요. 매주 한 번씩 캠핑을 나설 때마다 매번 다른 상황이 벌어지니까 저도 재미있고, 구독자분들도 영상을 흥미롭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영상 기획부터 촬영, 편집, 업로드까지 모두 혼자 하는 건가요?

유튜브를 시작하던 초기부터 지금까지 모두 혼자 다 하고 있어요. 영상 편집을 해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하루 이틀 빼고는 일주일 내내 정신이 없어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막 편집했거든요. 그런데 점점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업로드하고 댓글을 읽다 보니까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눈에 걸려요. 이렇게 해볼 걸, 저렇게 찍을 걸, 이런 것들이요. 그래서 초기보다 지금 노력이 배로 더 들고 있어요.



리랑의 영상은 행복하다. 온종일 폭우가 내려도 “비가 오니까 분위기 있어서 좋아요. 빗소리 들으면서 잘 수 있겠네요.”라고, 폴대 대신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텐트를 쳐도 “저 혼자 들어가서 자기 딱 좋은 크기예요. 아늑해서 좋아요.”라며 눈웃음을 짓는다.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에너지가 전해지는 걸까?




리랑온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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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부터 찌푸릴 법한 상황에서도 늘 웃으면서 “좋아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돌발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긍정적인 성격 덕분인가요?

긍정적인 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잘 됐을 때 매우 만족감이 큰 편이에요. 제 기준이 ‘완벽하게’, ‘멋있게’가 아니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폴대를 놓고 와서 텐트를 아예 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근처에서 운 좋게 튼튼한 나뭇가지를 구해 제가 하룻밤 보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 텐트에서 일 년, 이 년 살아야 하면 모를까, 딱 하루면 되니까 ‘이 정도면 되게 만족스러운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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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혼자 캠핑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더구나 여자 혼자요.

시간 맞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캠핑을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어요. 그 이후로 종종 혼자 가다가 이제는 거의 혼자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죠.
나홀로 캠핑의 가장 좋은 점은 자유예요.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어요. 텐트 치다가 배고프면 밥부터 해 먹고 텐트를 쳐도 되고, 얼른 누워서 쉬고 싶은 날에는 식사를 조금 뒤로 미루고 한숨 잘 수 있잖아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내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혼자 자는 게 무섭진 않은지 많이 물어보세요. 처음에는 걱정이 살짝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무섭지는 않아요. 워낙 겁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요. 다만 알아보시는 분이 있으면 서로 불편할까 봐 점점 오지로, 숲속으로, 해변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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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캠퍼로서, 캠핑지를 선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캠핑은 일상에 쉼표 하나를 찍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볼거리, 즐길 거리, 놀거리 가득한 도시에서 벗어난 만큼 자연의 품을 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무와 풀과 흙과 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자연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해요.


그러면 여태까지 가봤던 곳 중에 ‘꼭 가봤으면 좋겠다’ 싶은 캠핑지가 있을까요?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인데, 제게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생각보다 만족감이 큰 편이거든요. 그래서 소소한 게 즐겁고 하나하나에 만족을 느끼다 보니까 강하게 각인될 정도로 좋았던 베스트 캠핑지는 아직 없어요. 캠핑지가 좋았던 것보다는 캠핑지에서의 추억이 좋았던 편이 더 많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서 가거도에서 좋았던 건 바다를 보면서 먹고 쉬는 거였어요. 사실 이건 어느 섬을 가도, 어느 바닷가를 가도 경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때가 코로나19가 심할 때라, 서울에서는 음식점이 9시까지밖에 영업을 못 하는 상황이었어요. 가거도에서는 영업시간 제한이 없어서 늦은 시간까지 가맥(가게 맥주)을 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계획하고 갔던 곳이 아니었고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의 추억이 좋은 거라, 어느 캠핑지 한 곳을 추천하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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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추억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리랑을 만들었나 봐요. 텐트를 거꾸로 치고, 밀가루 반죽에 검댕이 묻어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재미도 그런 추억들의 일부겠지요.

얼마 전에 캠핑장에 거의 다 도착해서 지갑을 놓고 온 걸 알게 된 적이 있어요. 하필이면 그날 휴대폰도 고장 나서 이래저래 너무 난감한 상황을 겪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결국 그것도 추억이더라고요. 아마 그 영상을 볼 때마다 그날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지 않을까요? 그래서 좋았던 추억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노력해요. 매번 다른 곳에서 다른 추억을 쌓는다는 건 매력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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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랑온에어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드네요.

오히려 제가 사람들의 따뜻함을 배우고 있어요.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인정 많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돼요. 혼자 여행하러 왔냐며 걱정도 해주시고, 시장에서 장을 볼 때면 하나라도 더 챙겨 주시려고 하고요.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갈 사람들인데,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을 함께 기억하고 공유하게 된다는 게 참 좋아요.


리랑과 캠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같아요. 매주 한 번씩, 계속 캠핑을 가는 이유가 있겠죠?

아무것도 없던 노지에 나만을 위한 안락한 공간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신기해요.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내 몸 뉠 자리를 정리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공간이라는 점이 특별해요. 캠핑을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인생에 소소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이벤트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캠핑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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