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완전하고 완벽한 나의 최소 우주에서

2022.06.24

플레이리스트

고단한 하루의 끝, 내 몸 하나 편히 눕힐 자리와 손 닿는 곳에 좋아하는 것들이 놓인 곳. 나의 침실은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완벽히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휴식처이자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최소 우주다. 누군가는 작고 볼품없다고 말할지도 모를 그곳에서 매일 나라는 드라마가 상영된다. 그렇게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곳에서 하루의 끝에 울려 퍼질 BGM이자 OST를 골라 봤다.


글ㅣ김윤하




김세정 - Teddy Bear



김세정-테디베어

“내 팔은 네 pillow
내 말은 tequila
편하게 취해 꿈을 더 꾸게”



어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어른이 되고, 우리는 오히려 많은 것을 금지당한다. 아무 데서나 얼굴에 희로애락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속상하다고 길거리에서 펑펑 우는 것도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부모님에게 칭얼대는 것도 금물이고, 아무리 놀라고 화가 나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해결해야 어른스럽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는다. 피터팬이 옳았다. 어른이 되는 건 하나도 즐겁지 않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 가운데 인형이 있다. 취미건 그냥 귀여운 게 좋아서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인형을 좋아한다고 아무에게나 거리낌 없이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알 바인가. 침대 머리맡을 옹기종기 지키는 인형들이 주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은 10대 때도 60대 때도 변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곰 인형에서 뽑기 신공으로 모은 포켓몬 인형까지, 좋아하는 인형을 안고 자는 건 웬만한 정신과 상담보다 좋은 효과를 발휘함에 틀림없다. 물론 ‘Teddy Bear’ 가사처럼 낭만적인 밤을 함께 보낼만한 살아있는 인형을 구한다면 그 역시 말릴 생각은 없다. 다시 한번, 알 바인가.




백예린 - Bye Bye My Blue



백예린-바이바이마이블루

“나의 나의 나의 그대여
이름만 불러봐도 맘이 벅차요
난 더욱 더욱 더욱 크게 되어
널 가득 안고 싶고 그래요”



하루의 끝에 잘 보낸 하루에 대해 뿌듯함이나 기분 좋은 피곤함만 남은 날은 말 그대로 ‘운수 좋은 날’이다. 우리 대부분은 온전히 나만이 남는 밤, 하루 동안 축적된 자기혐오와 싸워 이겨 내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한다. 어차피 먼저 걸지도 못할 휴대폰 연락처를 역순으로 훑어보기도 하고, 우울은 수용성이라며 샤워를 한 번 더 하기도 한다. 가끔 정리할 때가 됐다는 핑계로 서랍이라도 뒤집는 날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다음 날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혼자만의 추억 여행을 새벽까지 떠날 게 뻔할 뻔 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루가 남기고 간 피곤이 사람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 때다.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노래 하나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내 속에 숨어 있는 나만의 최소 우주를 찾아가는 것이다. 백예린의 ‘Bye Bye My Blue’는 지금처럼 그가 ‘팝 끝판왕‘ 위치에 오르기 전, 더욱 진솔하게 자기 자신을 녹여내 만든 소품 같은 노래다. 주문처럼 반복되는 ‘나의 나의 나의 그대여’를 입술을 벌려 가만히 따라 불러 보자. 마음속 가라앉은 그늘이 조금쯤 씻겨 나갈 것이다.




롤러코스터 - 일상다반사



롤러코스터–일상다반사

“그래도 생각해보면 난 참
가끔은 힘들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참 행복해”



말에는 힘이 있다.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경험하지만 가장 쉽게 잊게 되는 상식 가운데 하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같은 속담을 되뇌며 우리 조상님들은 어떻게 이렇게 모르는 게 없이 똑똑하셨을까, 이왕 똑똑한 김에 유전자에도 좀 남겨주시지 괜스레 투덜대 보기도 한다. 그렇게 천 냥 빚이 오갈 정도로 중요한 말은 발화를 듣는 상대가 있는 상호 커뮤니케이션 상황뿐만이 아닌, 공기의 진동을 통해 내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가는 모든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 ‘어차피 안될 거’라는 자기방어적 부정어나 ‘죽고 싶다’는,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하기 이를 데 없는 감탄사 같은 것들이 점령한 사람의 하루는 그 말들이 가진 자극만큼 서서히 메말라 간다.

꼭 ‘파워 긍정’을 머리띠로 둘러메지 않더라도, 나에게 동력을 만들어줄 긍정적인 언어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옛날 영화를 뒤지다 몇 년 전 놓쳤던 영화를 찾고, 슈퍼에서 우유를 사고, 먹고 싶던 붕어빵을 한 봉지 사 들고 달랑달랑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박한 쇼핑 리스트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처럼 내뱉는 ‘가끔은 힘들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참 행복해’라는 혼잣말.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기분이 든다.




페퍼톤스 - Everything Is Ok



페퍼톤스–에브리띵이즈오케이

“쉼 없이 달려온 기나긴 이 길 위에
한 번쯤은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걸
가볍게 웃을 수 있다면
Everything is OK, Everything is alright”



평소 선망하던 사람들을 만나 사교다운 사교를 해도, 테이블 가득 넘쳐흐르는 산해진미를 심지어 법인카드로 배불리 먹어도, 세상에서 제일 마음 편하고 행복한 건 내 방, 내 침대 위다. 당신의 MBTI가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 아니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그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침대 위에서 손발이 따뜻해질 때까지 손/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일 아침을 걱정하지 않도록 머리까지 감아뒀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매일 만나도 만날 때마다 짜릿한 깊고 달콤한 잠, 그분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바로 그 순간, 이 말을 중얼거려 본다. ‘Everything’s Okay, 내일은 다 괜찮을 거야’.

종종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밝고 파워 넘치는 2인조 밴드 페퍼톤스의 노래들은 그렇게 늘 무모한 희망을 늘어놓으며 기꺼이 손을 내민다. 그 희망이 절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모른 척 그 손을 잡고 내일로 가고 싶게 만든다. 괜찮을 거야, 내일은. 그제서야 오늘이라는 하루가 무사히 눈을 감는다.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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