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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고백한다, 칵테일이 좋다고

2023.11.23

ⓒShutterstock


이제야 고백한다
칵테일이 좋다고


글, 사진│미깡

“어떤 술을 제일 좋아하세요?”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십수 년에 걸쳐 내 답은 조금씩 변해 왔다. 처음엔 소주와 맥주였고 잠깐 사케였다가, 한동안은 와인이었다. 물론 막걸리와 전통주도 언제나 언급하고, 요즘은 주로 위스키라고 답한다. 비싼 술이라 지레 겁을 먹고 있었는데 니트neat*로 홀짝홀짝 마시면 위스키 가성비가 오히려 좋다는 걸 알고 최애 주종이 되었다.


*니트(neat): 얼음을 넣지 않은 원액을 전용 잔에 따라 맛과 향을 즐기면서 아주 조금씩 마시는 것


거기다 강한 향이 ‘불호’여서 썩 즐기지 않았던 고량주가 최근 ‘호’의 영역으로 확 넘어왔으니, 이제는 그야말로 가리는 술이 없어진 셈. ‘정말 나는 술이라면 맛술 빼고는 다 마시는구나. 하긴 맛술도 마셔봤지….’ 뭐 이런 생각을 하릴없이 하는데 술 중에는 칵테일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칵테일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니, 은근히 좋아한다. 드라이 마티니도, 김렛도, 위스키 사워도, 보일러메이커도, 마르가리타도 즐겨 마신다. 특히 진에 올리브 과육을 으깨 넣는 더티 마티니를 무척 좋아해서 단골 위스키 바에 가면 메뉴에 없는데도 꼭 ‘더티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칵테일은 마실 때마다 그 순간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골라 마실 수 있고 기호에 맞게 커스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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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칵테일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을까? 온갖 술이 등장하는 만화 〈술꾼도시처녀들〉에서도 칵테일을 다룬 적은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무리 많이 마셔도 칵테일로는 취하지 않는다’는 식의 내용은 있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나는 칵테일을 언급도 취급도 하지 않았을까? 왜 칵테일은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한다고 허세를 부렸을까?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칵테일 = 달달하고 약한 술 = 쪼렙(낮은 레벨)’이라는 편견이 작동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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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하고 약한 칵테일, 물론 있다. 하지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칵테일의 세계에서 달고 도수가 약한 칵테일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당장 내가 좋아하는 마티니는, 어떤 비율로 만드냐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0도쯤 된다.

이걸 몇 잔씩 마시고 어떻게 안 취할 수가 있어? 실제로는 마티니 마셨다 하면 사망 플래그잖아! 그리고 술이 달달하고 약하면 뭐 좀 어때? 쓰고 독해야만 술인가? 단맛은 단맛대로 맛있잖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잖아!

 


아아… 그러고 보니 한때 저도주가 유행하면서 각종 과일맛 소주가 인기를 끌 때, 나는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그 술도 매우 무시했었다. 저렇게 달고 도수가 낮으면 음료수지 어떻게 술이냐면서…

근데 술, 맞죠. 엄연히 알코올이 함유된 술이고요. 도수가 적당하거나 입에 맞아서 맛있게 드시는 분들이 계신 건데, 제가 무시하면 안 되는 거죠. 절대 안 되죠. 아마 편견과 부심을 버리고 그냥 마신다면, 제 입에도 분명 달콤하니 맛있을 것 같네요.


나이를 마흔 넷이나 먹고는 이제야 깨닫고서 과거를 반성 중이다. 술 좀 마신다고 자부하던 시절, 자부를 넘어 자만에 빠져서 남을 깔보고 무안하게 한 일은 없었을까?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면 되는데, 독한 술을 권하고 술잔을 빨리 비우라 재촉한 적은 없었을까? 누가 칵테일이라도 시킬라치면 그건 술이 아니라며 면박을 준 적은 없었을까?

아니 지금 누구한테 뭘 물어봐? 있었겠지! 여태 칵테일을 술 취급도 하지 않은 걸 보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아아, 부끄럽다.. 이 자리를 빌려 저의 무지와 편견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사죄합니다….


처음으로 칵테일을 말하는 자리니까 얼른 가서 칵테일 한 잔 만들어 온다. 레시피는 이렇다.


이 술을 고른 이유는 레드 아이가 대표적인 리바이버Reviver: 되살리다 칵테일이기 때문. 칵테일에 대한 애정을 인정하고 이 세상 모든 술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되살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골랐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집에서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거라서다.

그나저나 리바이버 계열의 술은 숙취에 찌든 사람을 다시 살린다는 뜻으로 ‘해장술’을 일컫는다. 해장술은 ‘알코올 중독행 특급 열차’이므로 절대 마시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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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하면서도 상큼한 레드 아이를 마시며 조심스레 외쳐 본다.

“칵테일~ 나 미깡이야~ 사실 너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 앞으로는 이 마음 숨기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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