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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티에 숨은 역사

2023.11.07


밀크티에 숨은 역사

친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메뉴는 중식. 각자 원하는 메뉴를 하나씩 고르고 함께 나눠 먹을 탕수육을 시켰어요. 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합니다. 부먹이냐, 찍먹이냐.

부먹 vs 찍먹만큼 중요한 논쟁은 몇 개 더 있습니다. 예컨대 콩국수에 설탕을 넣는지 소금을 넣는지 라든가, 라면을 끓일 때 스프 먼저 또는 라면 먼저라든가.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도 그래요. 홍차에 우유를 넣는 사람과 우유에 홍차를 넣는 방법의 첨예한 대립. 영국에서는 무려 150년 넘게 이어진 논쟁입니다.


글│전민지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영국에서는 MIFMilk in First, MIAMilk in After라는 약어까지 쓸 만큼 중요한 문제예요. 『1984』, 『동물농장』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해당 내용이 담긴 에세이를 쓰기도 했는 걸요. 이러한 논쟁이 생긴 이유는 단순 기호의 문제인 부먹찍먹 논쟁과 달리, 영국의 차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5천 년 역사의 녹차에 비해 홍차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배에 싣고 가던 찻잎이 더운 날씨에 자연스레 산화가 되었고, 의외로 맛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진실이 아닙니다. 덖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 녹차는 다시 발효되지 않거든요.

400년 전, 중국 복건성의 어느 산골 마을이 홍차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어요. 탄생 비화도 꽤 흥미로워요. 차나무를 재배하던 마을에 청나라 군대가 들이닥치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가게 되었어요. 군인들이 마을을 점령한 사이 찻잎은 상해버렸고요. 아까운 찻잎을 그냥 버릴 수 없어 소나무 가지를 불살라 찻잎을 말렸는데, 유럽 상인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해요.

중국에서 탄생한 홍차는 여러 동인도 회사를 거쳐 유럽에 입성했습니다. 영국에 홍차가 처음 전해진 건 17세기로 추정됩니다. 포르투갈의 왕녀 캐서린이 찰스 2세와 결혼하면서 선물로 중국 홍차를 가져온 거죠. 당시 포르투갈은 왕실이 부유해 티타임이 일상적이었거든요. 오후에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는 캐서린 덕분에 영국 왕실과 귀족 사이에 홍차가 유행하게 되면서 티타임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죠.

당시 차는 매우 귀했습니다. 어찌나 비싸고 귀했는지 귀족들이 한 번 우린 찻잎을 하인들이 재탕해 마시고, 가난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사 갔다고 합니다. 계급에 따라 즐길 수 있는 홍차의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었죠. 예쁘고 고급스러운 중국산 찻잔 세트에 붉은 수색의 홍차를 우리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부유함과 더불어 감각까지 자랑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차에 들어가는 설탕도 무척이나 비싼 몸이었으니까요.

밀크티가 등장한 것도 이쯤입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맛과 향이 진한 종류의 홍차를 주로 마셨고, 찻잎을 듬뿍 넣어 진하게 우렸습니다. 쓰고 떫은 맛을 중화하고 위장을 보호하기 위해 우유를 넣은 것으로 보고 있어요. 우유를 섞은 홍차에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는 거죠.

밀크티를 처음 마신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1680년 프랑스 사교계 마담 세비네Madame de Sabliere가 보내는 편지에 ‘마거리트 부인이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셨다’고 쓰여 있었다고 해요. 그보다 앞선 1670년 커피하우스의 주인 토마스 개러웨이Thomas Garraway가 ‘홍차에 우유를 섞으면 위장 장애를 막을 수 있다’고 책에 쓰기도 했고요.

프랑스인지, 영국인지 혹은 처음 차를 유럽에 들여온 네덜란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밀크티는 홍차를 넘어서는 국민 음료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tea는 밀크티를 뜻해요. 홍차를 먹고 싶다면 스트레이트 티Straight tea 혹은 블랙Black tea이라고 요청해야 한답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밀크티는 홍차처럼 과시의 음료였습니다. 귀한 홍차에 우유와 비싼 설탕을 넣어 마시니까요. 당연히 어떤 찻잔에 어떤 방식으로 마시는지도 중요했어요. 이때 나오는 개념이 처음에 말한 MIFMilk in First, MIAMilk in After입니다. 우유를 먼저 넣느냐, 우유를 나중에 넣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게 된 거예요.

작가 조지 오웰은 1946년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London Evening Standard』 신문에 「한 잔의 맛있는 홍차A nice cup of tea」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우유를 나중에 넣는 방식MIA: Milk in After을 주장해요. 조지 오웰이 처음 불씨를 지핀 게 아니라, 이미 이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홍차 브랜드들도 가세하기도 했고요.

150년이 지난 후, 영국의 왕립화학협회가 조지 오웰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한 잔의 완벽한 홍차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하며 논란을 종결시켰는데요. 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컵에 뜨거운 홍차를 먼저 넣고 나중에 우유를 부으면 우유 속의 단백질이 변성되어 차의 맛과 향이 나빠진다’고 해요.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우유 먼저, 홍차 먼저 그게 왜 중요해?’ 누군가는 우유를 따른 잔에 홍차를 넣었고, 누군가는 홍차에 우유를 부어서 마셨다는 사실, 단순히 기호의 차이일까요?

아니요. 홍차와 밀크티는 부유함의 상징이자 사치의 수단이었어요. 차를 우리고 마시는 찻주전자와 찻잔 세트가 얼마나 고가의 도자기인지를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이었죠. 저렴한 다기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쉽게 깨지기 마련이거든요. 찬 우유를 따른 잔에 뜨거운 홍차를 넣는 방식MIF: Milk in First은 우유가 완충제 역할을 해 저렴한 다기도 보호할 수 있었어요.

다시 말해 찻잔에 뜨거운 홍차를 먼저 붓는다는 건MIA: Milk in After 고급스럽고 비싼 찻잔을 사용한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영국에서는 홍차와 우유를 타는 순서에 따라 출신 계급을 판단했다고도 해요. 지금은 ISO3103에 따라 홍차 온도가 80도 이하로 내려간 다음에 우유를 섞으면 된다는 국제 표준화 기준을 따르고 있지만, 단순히 기호의 차이라고만 보기에는 꽤 재미있는 역사가 숨어있죠.

영국과 중국의 아편 전쟁, 그로 인한 홍콩 반환까지. 영국의 차 문화는 세계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다즐링이나 아쌈 등 다양한 종류의 홍차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도,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가 된 보스턴 티파티의 배경에도 영국의 차 문화가 큰 역할을 했어요.

이뿐이 아니에요. 홍차와 우유를 곁들여 먹는 영국의 클래식 밀크티 외에 차와 우유를 함께 넣어 끓이는 일본의 로열 밀크티나 향신료를 추가하는 인도의 짜이, 대만의 쩐주나이차 등 다양한 밀크티도 19세기 해가 지지 않던 나라였던 영국의 차 문화에서 기인했고요. 팁 문화도 영국의 티 가든에서 생겨났습니다. 밀크티에 숨은 역사, 알아보니 생각보다 더 깊고 재미있네요.




참고자료│박정동, 『홍차 아뜰리에』, 21세기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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