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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도 숨을 쉴 수 있나요, 유블로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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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라는 키워드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저는 동그란 구멍이 난 창문이 떠올라요. 작년 이맘때쯤 본 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제품인데, 오래된 빌라를 자신만의 색으로 리모델링한 누군가가 사용하던 것이죠. 창에 구멍을 내서 환기한다니. 머리에 콕 박힐 수밖에 없는 아이템 아닌가요? 이 간단한 아이디어를 상용화한 사람이 궁금해졌습니다. 숨 쉬는 창, 유블로 김나리 대표입니다.


글ㅣ전민지, 사진ㅣ김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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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파사드 전문 디자인 그룹 브이에스에이의 한국 법인 대표이자 숨 쉬는 창 유블로를 만드는 김나리입니다.


숨 쉬는 창이라는 수식어가 재미있어요. 유블로는 어떤 제품인가요?
유블로는 창문을 열지 않고도 환기할 수 있는 신개념 창호 시스템이에요. 타공된 유리에 원형 환기구를 설치해 실내에서 간편하게 마개를 여닫음으로써 실내외 온도 차와 기압 차를 이용한 자연 환기가 가능하죠. 유블로 원형 창의 지름은 18cm에 불과해요. 2살 아기의 머리둘레와 비슷한 크기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결정한 치수죠. ‘이 작은 구멍으로 환기가 제대로 될까?’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시는 경우가 있는데, 환기의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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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lo



통풍은 개구부의 면적보다는 풍속, 온도, 기압의 영향을 더 받아요.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고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요. 이를 이용해 2개 이상의 유블로를 상하로 설치하면 가장 효과적이에요. 아래에 위치한 원형 창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위에 위치한 원형 창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거든요. 창문을 개방하지 않아도 충분히 바람길을 열 수 있어요. 창이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죠. 가끔 닫고 싶은데 미세먼지나 여름철 벌레가 걱정된다면 방진망이나 방충망을 별도로 설치해도 좋아요.


창문에 구멍을 낸다는 아이디어,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요. 네덜란드 건축가 로버트-얀 반잔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어요. 브이에스에이 대표이기도 해요. 그는 남들과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가 무척 많아요. 유블로도 그중 하나였어요.

아시아 국가들은 급성장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대규모로 지어진 건축물이 많아요. 속도를 중요시하며 지은 건물이다 보니 건축 요소들이 획일화된 편이에요. 창문도 마찬가지고요. 로버트가 홍콩의 아파트에서 지낼 때, 다 똑같이 생긴 창문을 보다가 유리에 구멍을 뚫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제가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으로 도전했어요. 실내 생활에 환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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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언제 창문을 여는지 생각해보세요. 냉난방기와 공기청정기가 워낙 잘 되어 있어 찬 바람을 쐬려고 창문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우리가 창문을 여는 이유는 주로 냄새나 답답한 느낌을 주는 이산화탄소 때문이에요. 우리가 숨을 내쉴 때마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공기청정기로도 희석이 안 되거든요.

여기 유블로 사무실이 언뜻 보기엔 적당히 넓어 보이지만, 이 공간에 네 사람이 3시간 이상 있으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이 넘어요. 그 이상 높아지면 두통이나 피로감, 집중력 감소 등이 나타나죠. 기계 환기 시설이 없는 저희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는 창문을 열어 자주 환기를 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에요.

‘미세먼지가 심한데 환기를 해도 괜찮나요?’ 묻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그래도 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해요. 이산화탄소 말고도 라돈이나 VOC(휘발성유기화합물)도 문제거든요. 특히 신축 건물에서는요. 오래된 건물은 누기가 있어서 어느 정도 통풍이 되는데, 신축 건물은 촘촘하게 짜여 있어 틈이 없어요. 시멘트나 화강암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 라돈, 새집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VOC의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요. 이런 유해 물질을 내보내는 유일한 방법은 환기뿐이에요.

특히 이산화탄소와 라돈은 무거워서 가라앉는 성질이 있어요. 키가 작으면 고농도의 유해 물질에 노출되기 쉽죠. 어린이집이나 청소년 시설에서 유블로를 선택하는 이유예요.


기존 창호와의 차이가 잘 와닿지 않아요.
가장 큰 차이는 개폐 창, 고정 창, 비정형 창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예요. 구멍 난 유리만 끼우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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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폐 창이 아닌 다른 모양의 창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이야기일까요?
사용자의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점이 유블로의 특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떤 창호를 쓴 집에 살 것인지 선택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해본 적이 없다면요. 창호 브랜드의 차이를 모르죠. 이 차이는 아마 건축가들도 잘 모를 거예요. 별 차이가 없고, 어려우니까요.

지난 수십 년 동안 창호는 제품군이 획일화되었어요. 사용자의 편의나 기호보다 단열 성능에 치중해 발전했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 안전한 재질과 안전한 디자인의 안전한 제품을 내놓았죠. 우리에게 개폐 창은 너무 당연했어요. 창문을 여닫아야 하니까요. 어떤 창호를 사용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요. 고정 창을 둔다면 환기는 환풍구로 대신했어요. 그런데 개폐 창은 고정 창보다 단열 성능이 떨어져요. 홈 때문에 생긴 틈으로 바람이 드나들죠. 최근에는 단열성을 높이기 위해 유리를 두 겹 사용한 복층유리, 세 겹 겹친 삼복층유리까지 제작되고 있어요. 두꺼워지는 만큼 가격도 비싸졌죠.

그리고 개폐 창은 프레임이 더 많이 필요해요. 개방감을 위해 개폐 면적을 넓힐수록 열린 공간을 통한 추락 사고나 외부 침입 위험이 커지거든요. 단열을 위해 두꺼워지는 유리를 지지하기 위해 창틀도 두꺼워지고, 안전을 위해 만드는 난간도 시야를 가려요. 창문을 여닫는다는 건 단열과 조망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는 말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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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블로는 환기를 위해 개폐 창을 선택할 필요가 없어요. 유블로 자체가 환기구 역할을 해요. 창문의 구성이나 프레임의 재질, 원형 창이 설치될 위치와 개수까지 모두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어요. 고정 창에 설치해도 개폐 창과 같은 환기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조망을 해치지 않고 에너지 손실도 적죠. 또 사다리꼴과 같은 비정형 창에도 설치해 환기를 할 수 있고요. 사용자가 원하는 모양의 창을 낸 공간을 구상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원형 창의 위치와 개수까지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데요.
시공팀이 효율적인 환기가 가능한 원형 창의 위치와 개수를 제안해요.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을 고려해서요. 사용자가 선택한 시안을 따라 엔지니어링팀이 풍압에 맞는 유리 두께와 사양을 계산해 주문하고, 2~3주 후에 설치해요. 시공은 일반적인 창호와 같아요. 다만 타공된 유리라는 점이 다르죠. 쉽게 말하면 공간의 주인이 본인의 취향에 맞게 창호를 꾸미는 거예요. 인테리어 요소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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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창 마개가 화분 형태인 사진을 보았어요. 여러 소재의 마개를 개발하신 건가요?
사실 제품을 판매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엔지니어로서 유블로를 만들 수 있는 도안을 판매하고자 했죠. 3D프린터가 상용화될 거로 예측했거든요. 마개의 다양성은 이미 그때부터 정해져 있었고요.

그런데 직접 3D프린터로 목업을 만들어보니까 판매할 수 있을 만한 품질이 아니더라고요. 3D프린터는 한 겹 한 겹 쌓아가면서 형상을 제작하는 방식인데, 매질이 층층이 쌓이면서 단차가 생겨 기밀과 수밀 부분에서 정밀성이 떨어져요. 방수와 단열이 완벽하게 되어야 하고 태풍도 견뎌야 하는데 제대로 기능한다고 보기 어려웠죠. 그래서 기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틀과 마개를 PC(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하기로 했어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는 단열과 기밀, 수밀 기능이 뛰어난 소재예요. 처음 계획대로 실내에 위치하는 마개는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해 재질과 형태, 용도를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어요. 어떤 마개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공간의 인테리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죠.

아직은 일반 고객보다 병원, 어린이집 등 기업이나 기관, 오피스에서 유블로를 선택하는 비율이 더 높아요. 여러 사람이 오가는 공간이라 환기가 더욱 중요하니까요. 불특정 다수가 머무는 곳이라 기본 스타일의 마개를 더 선호하시는데, 나무나 코르크, 쇠 등 다양한 소재도 선택할 수 있어요. 코르크는 화분의 기능을 할 수 있고 쇠는 로고 프린팅이 가능하죠. 스피커와 램프 기능을 하는 제품도 있는데, 주거 공간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주거 공간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있을까요?
창호는 생각보다 보수적인 제품이거든요. 환기나 조망처럼 실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역할도 하지만, 외기나 외부 침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요. 안전과 밀접한 부분에 보편화되지 않은 독특한 신제품을 시공한다는 건 보통 대범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래서 주거 공간에 유블로를 선택하는 분들은 도전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유블로의 고객은 대부분 25~35세였어요.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꺼리지 않고 신기술이나 기능적인 면에 더 집중하는 연령대라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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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공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유블로 시공 현장이 있나요?
시흥시에 있는 고층 아파트인데요. 사용자가 원하는 건 명확했어요. ‘시야를 방해하는 프레임을 없애고 싶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멋진 풍경을 가진 아파트였거든요. 바닷바람이 세서 창을 조금만 열어도 충분히 환기가 이루어지는 장점이 있지만, 또 그만큼 창문을 통한 열 손실이 큰 편이에요. 단열 효과가 떨어지고 추락 위험이 있는 개폐 창보다 높은 풍압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고정 창에 유블로를 설치하는 것이 개방감뿐 아니라, 환기와 열 보존, 그리고 안전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었죠.

거실 창을 통창으로 기획했지만, 건물 엘리베이터에 실을 수 있는 최대 크기가 그보다 작아 불가피하게 2분할된 유리 2장을 사용했어요. 프레임을 없애 달라는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유리와 유리 사이의 프레임 대신 유리의 상·하변과 측면만 지지하는 3변 지지를 도입하기로 했고요. 고층이라 안전 문제에도 주의해야 했고, 태풍에도 끄떡없어야 하니까 바람의 세기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죠. 시공하는 동안은 그 어떤 작업보다 예민했는데,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아 뿌듯해요. 저도 유블로가 사용자의 안전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충족하는 창호 솔루션이라는 것을 다시금 새기는 계기가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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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창호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새로운 솔루션이라는 게 확실하게 와닿는 예시네요. 처음 기획하고 실제 제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2016년에 처음 로버트에게 아이디어를 듣고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어요. 부족한 점을 보완해가면서 지금 버전의 유블로가 탄생했죠.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었는데.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한 기능을 추가한 차세대 스마트 유블로를 연구·개발하고 있어요.


차세대 스마트 유블로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조금 더 똑똑하고 간편하게 환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해요. 환기는 어려운 분야라서요. 바람 양에 따라 환기 정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창을 열지 말지 판단하기도 난감해요. 유블로가 가야 하는 길은 센서를 통해 창문의 개폐 여부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무실에 설치한 원형 창으로 1년 넘게 데이터를 쌓으면서 확정 지은 몇 가지 목표가 있어요.

실내외 풍압과 온도 차, 미세먼지 농도를 분석해 알려주는 개폐 여부 판단 시스템, 자동으로 여닫을 수 있는 자동 개폐 시스템, 그리고 공기 오염이 심할 때 자동으로 필터 처리해서 정화된 공기가 들어오게끔 만드는 공기 질 개선 시스템 등이요.

아직 연구 단계지만,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될 수 있도록 열심히 연구하고 있어요. 저도 유블로의 고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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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블로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네요. 창업 전에는 몰랐던 어려운 지점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품을 만드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요. 창업 전에는 브이에스에이 그룹의 파사드 컨설턴트였어요. 생각을 도면으로 옮기는 설계를 주로 했었죠. 그런데 유블로는 아이디어 스케치 하나를 제품으로 만들어낸 거잖아요. 유형의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또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힘들어요.


창업을 통해 깨달은 점이 또 있으실까요?
B2B(Business to Business)와 B2C(Business to Customer)의 차이요. 브이에스에이 그룹에서 파사드 컨설턴트로 일하는 동안 저의 주 고객은 건축가였어요. 건축주,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건축가의 클라이언트니까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어요. 건축가만 공략하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홍보나 마케팅을 해본 적도 없고, 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러다 유블로를 만들면서 B2C 시장에 뚝 떨어졌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더군요. 작년에서야 건축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건축 용어도 어렵지만, 창호 시스템도 어렵거든요.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할 방법을 지금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리뷰 영상이에요. 만들기 시작한 지 한 6개월 된 것 같은데, 제작하기까지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이건 건축의 긴 작업 기간 때문이죠. 신축 건물이라는 가정 아래 유블로를 쓰겠다는 고객이 실제로 유블로를 쓸 수 있기까지는 2~3년이 걸려요. 리모델링은 그보다 짧지만요. 실사용자가 리뷰할 수 있는 시간의 간격이 크다는 점은, 사업을 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부분이죠.

쉽게 말하는 건 여전히 어려워요. 전문가가 아닌 건축주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인 만큼 이해가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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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차이가 궁금해요. 건물과 관련된 업무라는 건 알겠는데, 확실하게 이해가 되진 않네요.
옷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옷에서 원단과 디자인은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적인 부분이잖아요. 파사드 디자인도 건물의 특징을 드러내는 비주얼적인 면이에요. 화려하거나 심플하거나 창이 많거나 단절되었거나 하는 부분이요.

그에 반해 파사드 엔지니어링은 기능적인 면을 의미해요. 스포츠 웨어나 고어텍스 등산복처럼 바람을 피하고 방한·발열 기능이 있고, 보온이 유지되는 것처럼 기능이 부각되는 옷들이 있잖아요. 파사드 엔지니어링도 건물 에너지를 절감하고 실내 쾌적성을 높이는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성능에 집중하는 것이죠.

디자이너로 일하던 초기에는 시각적인 면이 중요했어요. 더 화려하고 멋있고 고급스러운 외관을 만드는 게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그런데 10여 년 넘게 일하다 보니 시각이 달라졌어요. 기후 위기가 심각한 문제가 되면서 건물의 기능과 성능이 중요해진 거예요. 어떤 재료로 어떻게 설계했는지가 더 막중하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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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어떤 것에 가장 관심을 두고 계세요?
지속가능성이요. 더 오래 쓸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야 하고, 건물에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냉난방비를 아껴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응원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아리송해요.

단열 기준이 강화되면서 서울에서는 삼복층유리를 써야만 신축 주거 건물을 지을 수 있어요.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막상 우리나라 건물의 수명은 평균 20년 정도밖에 안 돼요. 삼복층유리를 사용해 건물을 지어 봤자 20년 만에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거예요. 건물의 이런 짧은 생애주기는 결국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거죠.

제 생각에, 한국에서 건물의 주기가 이토록 짧고, 건물의 품질이 생각만큼 높지 않은 이유는 판매하기 위해 짓는 건축이 많아서 그래요. 건축주가 본인이 살 집을 짓는 것과 판매를 위해 건물을 짓는 것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건축주가 집을 지으면 자연히 품질을 더 많이 고민하고, 10년, 20년 뒤에 수리와 보완이 편이한 형태로 짓죠.

이건 정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옳고 그른 건 없어요.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거니까요. 결국 소비자들이 바뀌어야 하는 거예요.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면 산업은 따라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환경 위기를 이야기하기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강의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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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꿈이 궁금합니다.
딱히 꿈은 없어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있어요.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고 나에게 두는 거예요.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죠.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내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브이에스에이 코리아보다 유블로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글로벌 그룹인 브이에스에이는 유블로에 비해 화려하고 탄탄한 기업이에요. 유명하고 멋진 건축 프로젝트에서 파사드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은 감사하고 특별했지만 지금은 유블로라는 작은 회사를 조금씩 키워나가는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한국이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개개인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그만큼 기대치 또한 높아 실망감에 빠지기 쉬운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이 경쟁 사회에서 부럽지 않게, 나 다운 사람으로 사는 게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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